[감상] 고래와 신발 / 이 찬
- 마경덕의 시 <고래는 울지 않는다>
나는 마경덕 시인의 시, <고래는 울지 않는다>를 읽으며 그 시의 맨 끝에 붙어 있는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글을 보았다. 그 때 나는 마경덕 시인의 시와 더불어 당선작 경쟁을 벌렸던 다른 사람들의 시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 당시 나는 마경덕 시인의 나이도 약력도 몰랐지만 나는 마경덕 시인이 갓 등단한 신인이라는 느낌보다는 오랜 동안 시 쓰기를 해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녀의 시와 다른 사람들의 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 스스로 그 차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마경덕 시인이 고래와 술고래를 연결한 것이나 곱창집 정경을 그려낸 것이나 술을 마시고 곱창을 씹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나, 그리고 포경선의 스크류와 곱창집 환풍기를 연결한 것이나....시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시 쓰기에 바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오래 숙성시킨 때묻은 공력이 느껴졌다.
연기가 자욱한 돼지곱창집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내들
지글지글 석쇠의 곱창처럼 달아올라
술잔을 부딪친다
앞니 빠진 김가,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고물상 최가 안주 없이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이 술집 저 술집 떠돌다가
청계천 물살에 떠밀려 온 술고래들
어느 포경선이 던진 작살에 맞았을까
쩍쩍 갈라진 등이 보인다
상처를 감추며 허풍을 떠는 제일부동산 강가
아무도 믿지 않는 얘기
허공으로 뻥뻥 쏘아 올린다
물가로 밀려난 고래들, 돌아갈 수 없는
푸른 바다를 끌어 와 무릎에 앉힌다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섬에 닿을 수 있을지...
바다엔 안개가 자욱하다
스크류처럼 씽씽 곱창집 환풍기 돌아간다
마경덕, <고래는 울지 않는다>
이 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읽어도 우리의 눈 앞에는 곧장 술고래들이 모여 있는 곱창집 정경이 펼쳐진다. 시에서,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하나의 장면이나 하나의 정경을 그려낸다는 것이 읽는 사람에게는 별 것이 아닐 수 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이미지만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곱창집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고래에 비유되고 두 이미지가 서로 교차 할 때 우리는 그 교차된 이미지들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마경덕 시인의 <고래는 울지 않는다>에서 문득 때묻은 공력을 느낀 것은 바로 독특한 은유를 통해 아주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아주 분명한 의미의 망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쉽고 편하다. 그것은 다른 예술장르에서도 똑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오랜 동안 갈고 닦은 숙련미와 노련미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고래는 울지 않는다>는 마경덕 시인의 등단작이기에 조금은 미숙하고 거칠 것이라는 나의 순간적인 생각을 단숨에 무너뜨린 작품이었다. 마경덕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는 것은 결코 단점이 되거나 약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마경덕 시인 안에 미처 소진되지 않은 시인의 생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많이 더욱 강하게 살아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고래는 울지 않는다>와 더불어 2003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던 <신발論>
을 읽어 보면 더욱 더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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